11월 달력 앞에서, 올해를 만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
남은 두 달을 벌충하는 시간으로 쓰면 12월 31일 밤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. 못 한 것보다 넘겨 온 열 장을 먼저 세어 보자는 이야기.

11월이 되면 달력이 조금 얇아 보입니다. 남은 장이 두 장뿐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, 마음이 먼저 뛰기 시작하네요.
“올해 안에 뭐라도 해야 하는데.” 많은 분이 11월 초에 비슷한 문장을 속으로 중얼거릴 겁니다. 저도 해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.
만회라는 말
1월에 적어 둔 다짐을 지금 꺼내 보면, 대개 절반쯤은 손도 못 댄 채 남아 있습니다. 그걸 보면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올라옵니다. 하나는 “아직 두 달이나 남았어”이고, 다른 하나는 “두 달밖에 안 남았어”입니다.
이상하게도 두 마음이 하는 말은 같습니다. 지금부터 더 달리라는 것. 열 달 동안 못 한 걸 두 달에 몰아서 하라는 것.
그런데 저는 그 말이 조금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. 1월의 나는 11월의 나를 모르고 적었으니까요. 그동안 어떤 날들이 있었는지, 무엇을 지켜 내느라 다짐 몇 개를 내려놓았는지, 1월의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.
두 달은 벌충용이 아니라
남은 두 달을 벌충하는 시간으로 쓰면, 12월 31일 밤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. 어차피 다 못 했다는 결론과, 내년엔 진짜 열심히 하자는 다짐. 그리고 1월이 되면 같은 장면이 다시 시작되구요.
그래서 올해는 순서를 바꿔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. 못 한 것을 세기 전에, 어떻게든 여기까지 온 것을 먼저 세어 보는 쪽으로요.
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됩니다. 크게 아프지 않고 넘긴 달, 미루던 연락 하나를 한 날, 그냥 나간 수많은 아침. 그런 것들은 다짐 목록에 없어서 점수가 안 매겨질 뿐이지, 없던 일이 아닙니다.
얇아진 달력을 보는 다른 눈
11월의 달력이 얇아진 건, 그만큼을 살아 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. 남은 두 장이 적은 게 아니라, 넘긴 열 장이 많은 것이더군요.
올해 다 못 한 일은 내년에 해도 되고, 어쩌면 안 해도 됩니다. 다짐은 나를 재는 자가 아니라, 그때의 내가 보낸 편지 정도로 두면 어떨까요.
혹시 지금 달력 앞에서 마음이 급해지셨다면, 이 한마디를 건네고 싶습니다.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올해는 이미 충분합니다. ^^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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